다올 아카이브

‘아름다움’은 기준은 어디에 있을까요?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아름다움의 분명한 기준을 주입합니다. 대상과 똑같이 그리고, 알록 달록한 색깔로 채색하여, 대상과 사실적으로 동일하게 그려냈을때 우리는 미술을 잘한다고 아이를 칭찬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아름다움을 정의 하는 어른들의 기준은 늘 편견과 통념을 벋어나지 못하기는 마찬 가지입니다. 예술은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 사이에 대한 해석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자기 주장인 셈입니다. 때로는 추한 것들 속에서 아름다움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 새로운 관점과 비전을 제시합니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 워크샵은 일차적으로 발표 당시, 도발적이고 불쾌한 아동서로 취급받던 모리스 샌닥의 동명 그림책 ‘괴물들이 사는 나라'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합니다. 어른들에게 반항하고 거침없이 공격적인 주인공 캐릭터가 1900년대 중반 아동은 무조건적이고 순수하며 순종적이다라고 정의한 어른들의 관념과 인물의 성격이 전혀 맞지 않았고, 금서로까지 지정되며,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한동안 비난을 면치 못했던 이 그림책은 오늘날, 아이들이 읽어야 할 최고의 명작 동화로 손꼽히며 아동문학의 고전이 되었고 나아가, 존 말코비치와 같은 유명 천재 영화 감독들의 손끝에서 영화로 다시 태어나기도 했습니다. 이 책에서 다루어지는 내용 뿐만 아니라 이 책 자체가 사회가 제시하는 일방적이고 일반적인 미적 기준이 시대마다 변할 수도 있는 가변적인 것이며, 우리가 고집하는 미적 기준이 얼마나 허상일 수 있는 지 일깨웁니다. 

‘ 괴물들이 사는 나라’ 워크샵에서는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우리가 무조건적으로 추한 것이 악하다라거나 악한 것이 추하다는 이분법적 편견을 극복하고, 마음의 본성이 외적 생김새와는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미지 작업을 통하여 확인하게 됩니다. 아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 동물, 곤충, 식물들의 이미지를 뒤섞어 상상의 가지를 확산하고, 그 상상의 결과물들을 손으로 직접 뜯은 색종이로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 ‘나만의 괴물’을 만들어 냅니다. 나아가, 이러한 괴물들의 인격을 자기 스스로 정의하며,  어린이들에게 나쁜 짓을 하는 사람들만 잡아 먹는 괴물(양지아), 남몰래 눈물을 흘리는 마음 여린 괴물, 발차기를 잘하는 괴물 등등의 각종의 괴물들을 향한 상상의 가지를 뻗게 됩니다.